음악 듣기
1997년은 한국 CCM 역사에 있어 정점을 찍는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음반시장의 규모도 컸고 발표되는 음악들의 수준도 대중성, 작품성에서 뛰어난 것들이 많았습니다.
대전에 위치한 침신대학교에서는 미국의 음악 페스티벌을 롤 모델로 한 CCM페스티벌이 일주일간 열리기도 했었고요. 그리고 또 하나, LOOK뮤직에서 주최한 CCM대회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97년 대회는 겨우 두 번째이긴 했지만, 이미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두 기독교 방송국의 대회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게 실험성과 동시대적인 음악성을 가장 우선시 하는 대회로 알려지면 많은 젊은 크리스천 뮤지션들이 '벌떼' 같이 몰려들었습니다.
1회 대회 후 열린 2회 대회는 본선 진출자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았었죠. 저 역시 당시 대회가 열렸던 횃불회관(현재 온누리 교회 양재성전)에 가서 역사의 현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의 기억도 이제는 15년 가까이 지나다보니 가물가물해 집니다. 아마 대상은 지금은 크로스오버 보컬 팀인 해오른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은미씨가, 금상은 모르겠고, 은상은 앞에서 소개했던 얼터가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쨌든 대회 때마다 본선 진출자들이 미리 녹음한 앨범이 유통이 되었는데요. 사실, 대회 당일 여러가지 변수로 생길 수 밖에 없는 라이브의 불안함을 확실히 커버해 주는 스튜디오 앨범은 저에게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대학생이기도 했고, CD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어 Tape을 샀는데요.
지금도 기억하는 것이 첫 번째 트랙을 들으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녀 듀엣이었는데, 남자 보컬이 굉장히 낯이 익은 목소리였던 겁니다. 해답을 찾을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요계에서 당시 빅 히트를 쳤던 Toy 2집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부른 김연우 였습니다.
알고보니 대회에는 본명인 김학철로 출전했습니다. 여성 보컬은 역시 현재 '해오른누리'에서 활동하는 유현숙이었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김연우 본인이 직접 작곡한 곡으로 지금 들어도 상당히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좋은 곡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연우는 노래만 하는 가수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95년에는 싱어송 라이터들의 데뷔무데로 알려져 있는 유재하 가요제에서 금상을 탈 정도로 작곡능력까지 탁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미 가요 쪽의 유명한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또 96년에는 빅히트 된 곡의 가수로 알려진 그가 97년 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대회가 그렇지만 아마추어들에게만 기회가 열려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추측하기로는 일단 유재하 대회는 CCM대회가 아니니 상관이 없었을 것이고, Toy앨범으로 실질적인 데뷔는 했지만 앨범 녹음 기간과 실제 대회참가 기간은 96년이었던 것을 본다면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뭐... 아니면 대회 주최측에서 참가자에 대한 조회를 제대로 안했을 가능성도 높고요.
어찌되었든 김연우(김학철)의 참여가 이 앨범의 가치를 높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97년 대회 참가자들은 이후 한국 CCM의 아주 중요한 인물들이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이은미와 김연우의 듀엣파트너였던 유현숙 외에도 CCM뿐 아니라 90년대 후반 한국 인디음악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얼터, 역시 굉장한 실험 정신으로 무장했던 이은구 등등... 아쉽게도 지금은 CCM시장 내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는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큰 족적을 남긴 아티스트들이 97년 대회를 통해 데뷔를 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앨범을 처음부터 듣고 있는데, 역시 당시에는 아마추어들이었던 참가자들의 불안한 보컬이 손발을 오그라들게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마음에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음악을 통한 크리스천 문화의 전파, 그리고 풍성한 나눔"의 정신은 충분히 전달되고 있습니다.
드럼이나 일렉기타의 교회 안에서의 사용이 일반화 된 지금이긴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연주하는 사람들이나 듣는 대중들의 의식은 오히려 그 당시보다 훨씬 보수적, 혹은 패쇄적이 되어 있는 것 같아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97년 이 대회의 앨범을 들으면 음악적인 완성도보다 이들이 꿈꾸어왔고, 추구하고자 했던 시도들이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그때의 열정을 가진 새로운 CCM아티스트들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요?


